해방촌이 좋아서 몇 해를 걸쳐 드나들다보니 이곳의 사람들을 알게 됐다. 그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며 해방촌이 더 좋아졌다. 그렇게 해방촌과 해방촌에 사는 사람들이 알고 싶어졌다. 이곳에 내내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이주민의 공간, 해방촌은 외국인 못지않게 어르신들이 많이 거주하신다. 이들은 한국전쟁 이후 정착한 피란민 1세대와 1.5세대로 해방촌의 시작을 함께한 토박이이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다. 이정화, 이정옥 할머니 자매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흥남부두로 시작하는 이분들의 이야기는 삶의 고비 고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게 해준 사람들에 대한 추억과 고마움으로 이어졌다. 어제 일은 기억이 나지 않아도 그 시절은 기억한다며 해방촌의 우물자리, 도랑, 하꼬방과 요꼬 공장, 그리고 그 때의 사람들을 하나, 하나 기억해 말씀해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해방촌은 그들의 고되고 치열한 과거를 기억하는 또 다른 고향이다.
그런 해방촌이 변해가고 있다. 시장 안 풍경도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다. 어떤 이는 오르는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이사를 갔고, 늘 거기에 있던 가게들도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 자기 집과 가게가 있던 이들은 이참에 정리하고 이주하기도 한다. 마트가 들어서고 편의점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면서 슈퍼가 사라진다. 사람도, 집도, 가게도 그것이 존재하던 시간과 관계없이 사라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월남인 2세대인 새마을슈퍼 신상호 사장님 인터뷰는 이전부터 진행되던 해방촌의 변화가 조금씩 눈에 읽히던 즈음에 시작됐다. 그리고 우리가 그의 인터뷰를 마치고 녹취록 정리를 끝낼 즈음, 새로 생긴 마트의 영향으로 새마을슈퍼가 야채를 팔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언젠가 인터뷰를 하리라 계획해 둔 몇 군데의 오래된 슈퍼들은 문을 닫았다.
해방촌의 변화가 더욱 빨라진다. 당연한 변화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당연하지도, 어쩔 수 없는 것도 아니니까. 담고 싶은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많은데, 나의 속도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다.